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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기행 (7)

임채욱 초대전 <블루 마운틴>,

흰물결 갤러리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150 흰물결 아트센터)

2021.8.5.~9.30

지난 한 달은 더위 때문에 정신과 육체가 힘들었다. 장마가 끝나고 열흘 넘게 이어진 무더위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건식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과 그로 인한 열로 기력이 쭈욱 빠지다가, 8월 중순부터는 날씨가 시원해져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쾌한 기분을 더 잘 느끼기 위해서 나는 집 주변 산에 올라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날씨에 지친 나는 탁 트인 곳에 가서 저 멀리 시원한 경치를 바라보고 싶었다. 이런 와중에 발견한 전시가 흰물결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 <블루마운틴>이다. 여기서 임채욱 작가의 초대전이 진행 중이었다. 작가 본인이 산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을 포토샵으로 가공하여 특수 제작한 한지에 인쇄하는 방식으로, 투명하고 운치 있는 산의 분위기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블루마운틴 2114>, 50x150cm, 한지에 안료 프린트

산이 가장 파랗게 보일 때는 언제일까? 작가의 말에 의하면, 가장 선명한 푸른빛의 산은 추운 겨울바람이 불지 않는 맑은 날 오전 9시에서 12시 사이 해가 역광으로 비출 때라고 한다. 임채욱 작가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저 멀리 있는 산이 안개에 걸쳐 아른아른 보이며, 푸르고 잔잔한 분위기가 있는 <블루마운틴 2114>와 <블루마운틴 2007>이다. 먹으로 산을 담백하고 굴곡지게 그린 진경산수화와는 다르게 이 작품들은 산이 겹쳐있는 모습을 단아하고 평온하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을 멀리서 보면 한국화 물감을 얕게 여러 번 겹쳐 만든 것처럼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직조가 잘된 단단한 한지, 그 안에서 하늘거리는 종이실 같은 걸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이 한지에 프린팅되어 있기 때문에 가까이서 봐도 그림 같은 인상을 준다. 꾸물꾸물 나풀거리는 실이 운해처럼 보여 산과 산 사이의 푸른 공기를 드러내는 듯하다. 한 겨울날의 일출을 떠올리게 하는 은은한 핑크빛 하늘이 짙푸른 산과 만나 비현실적이면서도 탁 트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블루마운틴 2007>, 50x150cm, 한지에 안료 프린트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소백산을 등반한 게 생각났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흔들다리 위 눈보라가 몰아치는, 매우 차가운 하얀 산의 공기와 감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작 꼭대기에 올라가니 눈보라는 어디 가서 없고 일출 직전의 고요한 하늘과 파랗고 하얀 산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블루마운틴이라는 전시 및 작품 제목도 인상적인 게, 산이라 하면 보통 연두색이나 짙은 녹색을 떠올리는데 ‘블루’를 주된 색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임채욱 작가의 작품은 차가운 겨울에 만날 수 있는 청명하고 깊은 파란빛을 묘사하는 것 같아 내 어릴 적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현재의 정신도 맑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갤러리에서도 작품을 널찍하게 볼 수 있도록 소파가 있어서 잠시 앉아 명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바람을 쐬며 집 뒷산에서 바라본 풍경과는 다르게 편안한 기분이 주가 되어 더위가 싹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한국의 전통 산수화는 바위가 돋보이는 암산을 그렸잖아요. 진경산수화에서 금강산, 삼각산, 인왕산이 등장하는 이유예요. 저는 우리나라 산의 ‘겹침’의 미학과 ‘쪽빛’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블루 마운틴’은 호주와 자메이카에 있지만, 한국처럼 추운 겨울의 맑고 깊은 푸른빛을 감상하기는 힘듭니다. 어쩌면 한국에서만 진정한 블루 마운틴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1 임채욱


임채욱 초대전 블루 마운틴은 흰물결 갤러리에서 9월 30일까지 진행되니, 청아한 산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분들은 직접 가서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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