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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기행 (6)

<Future Is Now> 8.10 성남(광주대단지) 민권운동 50주년 기념전

성남큐브미술관 기획전시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성남대로 808 성남아트센터)

2021.7.23~8.22

매미가 찌르르 울고 햇빛이 땅을 말려버리듯 쏘아대는 그늘 없는 여름 어느 날 성남아트센터 안의 큐브미술관에 들렀다. 그곳에서는 8.10 광주 대단지 민권운동의 50주년을 기념하는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광주 대단지 ‘사건’이라 명칭 되었던 이 일에 관련해서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다양한 독자적 해석을 한 전시였다. 각 작가가 현재 성남과 광주 대단지 민권운동에 관해서 회화, 영상, 설치미술, 참여 미술 등으로 펼쳐 놓아 흥미로웠다. 이 사건을 요약하자면, 1970년대 성남의 중원구, 수정구 일대에 (당시 경기도 광주군) 정부가 서울시 판자촌 퇴거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개발지역 주민들이 정부의 행정에 항거하여 도시를 점거하고 격렬하게 항의한 민권운동이다. 미술관에는 이 일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현재 성남 도시공간 작업도 같이 전시되어있어 성남의 현재와 과거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였다.


임흥순x신흥사진관, <성남 아카이브>

원형 평상, 인포그래프, 사진, 돌, 공구 아카이브, 화분, 2021

큐브미술관 3층에 도착하면 이런 식으로 공공기관 로비 같은 장소가 보인다. 이 미술관에 처음 방문했는데 이 전시 광경을 보고 약간 얼떨떨했다. 예전에 ‘양재시민의 숲’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갔을 때와 매우 비슷한 구성(?)이었기 때문이다. 양옆에 있는 유리 전시장과 널찍하게 떨어져 있는 중형 크기의 화분, 벽에 시간순으로 붙어있는 그래프가 공공기관이나 전시관 같이 보여 신기했다. 이곳에서는 서울시의 광주 대단지 계획에서부터 현재 성남 일대 재개발에 이르는 성남시 도시 형성 과정을 인포 그래프로 보여주고 이와 관련해서 수집된 자료를 아카이브 형식으로 보여준다. 벽면의 노란 띠 위아래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 자료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왼쪽(1970년)에서 오른쪽(2020년)으로 갈수록 관련 기사가 적어지는 게 눈에 띈다.





김태헌, <금광1동 수인번호>

금광1동은 현재 재개발 단계에 있으며 2018년에는 주민들이 거의 떠나갔다고 한다. 김태헌 작가는 3월 말부터 지도를 들고 금광동의 가파른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고 한니 작가의 열정이 대단하다. 금광1동 재개발 단지에 있는 빌라에, 락카 스프레이로 쓰인 철거확인 표시(숫자)를 하나하나 찍어 현수막으로 프린트한 작품이 중심적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철거표식으로 써놓은 구번지 이미지를 가지고 며칠간 포토샵 작업을 했다. 작업을 끝내자 골목길도 없고, 나무도 없는 단순반복적인 패턴의 높고 거대한 벽이 나타났다. 숫자만 지워내면 벽돌로 만든 높은 빌딩이다. 재개발로 사람들이 복잡한 미로 속 낡은 주거공간을 탈출한 곳은 결국 하늘대신 머리에 이웃을 이고 살아갈 더 춥고 더 비싼 주거공간이다.’ 김태헌, 2021

실제 금광1동에서 수집한 창틀을 프레임으로 삼은 작품(두 번째 사진)은 막막하고 갑갑한 인상을 준다. 재개발로 사라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단순하게 숫자로 표시되어 벽돌처럼 위로 쌓이고, 결국 창문 밖에서 바라보는 이 가상의 벽돌 건물은 결국 또 다른 높고 고급스러운 아파트가 될 예정. 이전에 베를린에서 100년 된 아파트에 며칠 묵어보면서 사람들이 건물을 보존하려는 노력에 감탄하면서도, 나무가 삐걱거린다든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든지 등 불편함을 느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구가옥을 허물고 그곳에 아파트를 새로 짓는 재개발이 무수히 이루어지고 있다. 길을 지날 때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김태헌 작가의 <금광1동 수인번호>는 이 경험과 생각을 환기해주는 좋은 작업이다.



임흥순x신흥사진관, <공중정원>

스티로폼 조각, 와이어, 화분, 선풍기 등 2021

이 전시공간은 경사가 심한 태평동 일대를 모티브로 삼는다. 작가들에 의하면 구불구불하고 복잡하게 드러난 전선과 각 주택에서 키우는 화분을 태평동의 특징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와이어가 특정한 모양의 지도를 형상화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성남이 서로 이어지고 공존하는 모습, 광주 대단지 사건의 과거와 미래 풍경이 층위로 드러나는 구조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해당 작품에는 태평동 주민들에게 기증받은 화분이 걸려있다. 전시가 진행되면 될수록 화분이 더 많아질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정원은 마음의 안정을 취하는 곳이자 사색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상징성을 가진 정원을 이렇게 고요하고 몽상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성공적인 분양을 기원드립니다’


신흥사진관, <하이힐즈 분양관>

사각 평상, 텍스트, 모니터, 오디오, 점토위에 아파트 조형물, 캐비닛, 사진, 벽지 등, 2021

이곳은 신도시의 아파트 분양관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공간을 만든 작품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 홍보물-전단, 조감도, 입체조형물-의 형식을 따와 이 공간에 전시해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장소에서 관람객들은 가상의 계약서를 작성해서 집을 분양받을 수 있어, 참여 미술의 형식도 띠고 있다. 결국 이 작품으로 집 장만에 대한 꿈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합성된 포스터와 아파트 홍보 문구들을 보고 있으니 무분별한 아파트 건설에 대해 약간은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즈음 집값이 나날이 오르면서 아파트 장만은 더욱 힘들어지는 추세다. 전에 친구와 서울 남산타워에 있는 카페에 가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저 조그만 창문 구멍 하나가 몇 억이라니’, ‘ㅋㅋ나한테 저 구멍 하나만 줘라’.



임흥순, <고향>

2채널 비디오, 4채널 사운드, 천막형 스크린 및 조명 설치, 31분 30초, 2021


두 개의 스크린을 포개어 놓은 이 작품은 광주 대단지 조성 당시 만들어졌던 군용천막을 형상화한다. 각 스크린은 다른 방식으로 성남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스크린 A는 성남시민이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성남의 역사를 재조명하며 스크린 B는 태평동을 배경으로, 미술 작가 성능경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스크린 A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성남에 대한 일화를 풀어내고 이를 공유한다.

중학생 때 성남시가 서울의 위성도시라고 배우긴 했으나 어떠한 연유와 방식으로 일이 이루어진 지는 배우지 않았다. 또한 대학 시절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성남시에서 살았지만, 대단지 사건에 대해 잘 몰랐다. 각 파트에 있는 도슨트들이 역사와 작품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주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전시는 대단지 사건을 다룰 뿐만 아니라 작가들의 성남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내용을 담았기 때문에 성남에 대한 지식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 <Future Is Now> 전시회는 어느 한 장르에 국한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아니라 다양한 미술 갈래를 통해 성남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여운이 남았다. 위 작품 외에도 더 규모가 크고 멋진 작품들이 많다. 관심 있는 분들은 시간 날 때 들러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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