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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기행 (5)

<호민과 재환>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61)

2021.5.18.~8.1

© 포스트24

요즘 가장 핫하다는 전시 <호민과 재환>전에 다녀왔다. ‘호민‘은 한국전통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신과 함께』 를 그려낸 유명한 웹툰 작가 주호민이고, ’재환‘은 주호민의 아버지이자, 한국 미술계의 대표적인 원로작가인 주재환 화백이다. 『신과 함께』 의 팬으로서 전시를 꼭 보고 싶었는데 인기가 얼마나 많은지 주말에는 예약이 다 찼으며, 평일에도 전시장에는 관람객이 많았다. 특히 서울 중심에 있는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라서 그런지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근처 직장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특이하게도 보통 무표정인 관람객들이 기분 좋게 피식거리거나 미소를 지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유가 뭐였을까? 웹툰 『신과 함께』 를 보면, 이곳저곳에 개그적 요소들이 섞여 있는데 이 때문에 나는 주호민 작가가 매우 위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립미술관에서 주재환 작가의 작품을 보고 나서는 그런 재치가 아버지의 것과 닮았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되었다. 두 작가 모두 솔직하면서 유쾌한, 그리고 통찰력 있는 작품을 그린다는 점이 가장 닮은 듯하다. 작품 외적으로는 그림들이 간단한 듯 보이지만, 속을 살펴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감동도 일으키는 점이 재미있었다. 주호민 작가가 웹툰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주재환 작가는 작품 한 점에 이야기를 응축해 짧은 하이쿠 시처럼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보통 무덤덤한 표정을 짓는 관람객들이 살짝 웃음을 보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호민 초상> 2020 (왼쪽) 과<주재환 초상> 2021 (오른쪽)

© 포스트24

관람객을 반갑게 맞이하는 서로를 그린 초상화.

<호민과 재환>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재치있는 작품들이다.



주재환, <훔친 수건>, 2012, 캔버스에 아크릴과 수건 콜라쥬, 66 x 53cm

© 포스트24

훔친 돈이 전혀 없는 투명사회에서

사우나의 도난방지용 훔친수건을 훔친 딸을 혼냈더니

훔친 기억이 없다고 하네



주재환, <정신해방 01>, 2017, 유화 유리액자.

이 작품이 성공한 이유

무엇을 그렸는지 볼 수 없어

호기심을 자극하니까



주재환, <귀찮아>, 2020(1998), 집게, 크레용, 종이, 95 x 74cm

귀찮아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게

실제 수건을 걸어놓거나, 예전에 쓰던 캔버스를 뒤집어 놓는다든가, 간략한 드로잉에 집게를 이리저리 꼽아놓는다든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다양하고 표현도 다양하다.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작품들이 일상적이고 회화가 가지려는 권위로부터 비켜 가 있다는 점이다. 그림과 문구가 한 곳에 같이 있는 방식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나는 이러한 만화 같으면서 시화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순간순간 떠오른 일상적이고 사소한 생각을 하루 동안 품고 있다가 작업으로 표현한 느낌이랄까. 사람들이 주재환 작가의 작품을 흥미롭게 여기는 점이 바로 짧은 글과 간단한 그림이 평면이 아니라, 2.5차원 혹은 3차원 입체로 발현돼서 좋아하는 것 같다.



▲주재환, <물vs물의 사생아들>,

알루미늄 빨래대, 각종 음료수 제품, 드링크 제품, 가변설치, 2005

주재환 작가는 위와 같은 방식 말고도 버려진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재창조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기도 했다. 작품의 제목 또한 매우 유쾌하다. 단순히 빨래 건조대에 다 마신 음료수를 걸어 놨을 뿐인데 제목 덕분에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졌다. 건조대 사이사이에 뚝 뚝 떨어져야 할 물방울 대신 음료수병이 걸려있는 걸까? 유쾌한 변신이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환경 오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 미술관 3층. 주호민 작가와 주재환 작가의 작품들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 포스트24


전시장에서는 작품을 크게 주재환, 주호민 작가로 각각 파트를 나눠놓기도 했지만 이렇게 콜라보레이션 분위기로 전시된 것도 있었다. ‘주’ 부자의 작품이 서로 엮여서 더욱 재미있는 모습을 자아낸다. 두 작가 모두 한국의 전통 무속신앙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걸린 주재환 작가의 그림은 도깨비 등 우리나라의 옛이야기와 신화, 불교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주호민 작가의 칸 만화와 벽면에 그려진 형상 또한 한국의 저승관을 보여주고 있다. 벽면에 넓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K-전통, 대중문화가 한 면에 화합된, 일정한 연대기를 가진 현대미술 같이 보였다.


▲주호민, 『무한동력1』(2008) 중 <꿈이 뭔가?> © 포스트24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보기 시작했다. 화려한 그림체는 아니었지만 털털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게 흥미로워서 『짬』, 『무한동력』, 『신과 함께』까지 정주행했었다. 당시에 봤던 장면이 운 좋게 판넬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때는 대사 하나하나가 별로 깊게 와 닿지 않았고 크게 기억에 남지 않았는데, 다시 보니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 금방 알 것 같다.

“회사에 들어가면 자네의 꿈이 이루어지는 건가?”

“음.. 그때는 또 다른 꿈이 생기겠죠.“

“그런 건 ‘꿈’이라기보다는 ‘계획’이라고 한다네. 그 계획조차도 스스로 짠 게 아닐

것이네.“

“.. 그럼 뭐가 꿈이죠?“

“어렸을 때 어른들이 그런 질문을 하지. 넌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그때

자네가 했던 대답이 대기업 직원은 분명 아니었을 거란 말야.“

“하하. 그건 그렇죠. 공무원도 분명 아니고요.“

“그런데, 꿈이 밥을 주진 않잖아요.“

”자네에게 필요한 건 밥이 아니야. 죽기 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는 1부 저승편, 2부 이승편, 그리고 3부 신화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 작품들은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며 서로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1에서 3부까지의 주요 등장인물은 서로 인연이 깊어 한편으로는 과거를 공유하기도 한다. 필자가 이야기를 알려주면 재미없으니 웹툰이나 단행본으로 내용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주호민, 『만화전쟁』 (2015) 중 <1화 두 어시>. © 포스트24

이 작품은 주호민 작가가 파주에 살 때 북한에 전단지를 넘기는 정책을 보고 자신의 만화가 북한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해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만화의 등장인물 진기한은 주호민 작가 작품에 연속해서 등장한다. 진기한이 만나는 여러 인물은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통사람이다. 주호민 웹툰의 특징은, 드라마나 영화처럼 갑작스럽게 내용을 전개하지 않고, 이야기 층위가 유기적으로 직조되어서 전체적인 스토리의 완성도가 탄탄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주호민 작가의 웹툰이 대중에게 많은 공감과 재미를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웹툰과 현대미술. 장르로 치면 매우 다른 갈래지만 두 작가가 공통적으로 가진 단순해 보이는 유쾌함이 그림과 작품에 자연스레 녹아있었다. 전시 작품도 많고 내용도 자세히 담고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특히 주호민 작가의 팬이라면 이 전시를 정말 추천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작가의 콘티, 스케치 등 러프한 작업도 같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민과 재환> 전은 8월 1일까지 전시하고, 현재는 코로나 시국 때문에 입장하려면 예약을 해야 하니까 관람하고 싶으신 분들은 시간이 있을 때 한번 방문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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