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기행(14)

<모제 아세프자: I Can Still Feel The Breeze>전

갤러리 조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3)

2022.3.30. ~ 5.6

따뜻한 봄바람이 솔솔 부는 4월 중순, 바람도 쐬고 햇볕도 쬘 겸 한강진역 주변에 있는 갤러리 조은에 다녀왔다. 이번에 봤던 전시는 독일로 귀화한 이란 작가, 모제 아세프자 Moje Assefjah의 <I Can Still Feel The Breeze>였다. 이 작가는 ‘창문을 열고 바라본 자연’이라는 주제로 고유한 회화 언어를 풀어내고 있다. 2021년 아트파리 솔로쇼, 2022년 독일 뮌헨 렌바흐하우스뮤지엄에 작품이 소장되면서 모제 아세프자는 유럽미술계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I Can Still Feel The Breeze>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덕분에 해외에 가지 않아도 현재 뜨고 있는 이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품을 보기 전, 제목으로 유추했을 때 작가가 바람을 연상시키는 매체를 사용했거나, 보드라운 바람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갤러리에 들어서서 작품을 둘러봤을 때는 넓은 붓을 쓴 그저 평범한 추상회화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림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묘한 분위기가 풍겨 왔다. 가끔 어떤 그림을 보면 네모난 캔버스틀 안에 그림 자체의 에너지와 기운을 가둬놓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모제 아세프자의 작품은 그런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고 오히려 캔버스틀이 ‘창문’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첫 번째 이유로는 캔버스 크기나 가로세로 비율이 실제 있을 법한 창문 규격 같았고, 두 번째로는 그림에서 양옆으로 커튼 같은 형태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몇 작품 중에선 추상화된 창문틀을 그려놓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완전추상이나 환상, 비정형적 추상보다는 창문 안팎의 공간을 유추할 수 있는 반구상 작품처럼 보였다. 하지만 작품마다 이미지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아예 반구상, 완전추상 작가라고도 말할 수 없다. 이렇듯 무엇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에는 그림이 애매하고 묘해서 더 매력적이다.


작가에게는 열린 창문 밖을 통해 그리운 장소를 떠올린 경험이 있다. 가령, 어린 시절 테헤란에 살았을 때 창 밖으로 바라본 산이 마치 자신을 안아주는 듯했으며, 이후 작가가 고국인 이란을 떠나 독일로 귀화했다가 18년 만에 테헤란을 다시 방문했을 때는 만년설로 유명한 엘부르즈산맥의 절경을 보고 매우 아름답게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들 때문에 작가는 창문을 열어 자연풍경을 바라본다는 주제에 관심이 가게 된 듯하다. 필자가 모제 아세프자의 그림을 보며 따뜻한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통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던 이유는 작가가 연출하는 풍경을 공감각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제작을 할 때 ‘에그 템페라’라는 기법을 고수하는데, 이것은 천연안료에 계란과 물, 아마인유(린시드 오일)를 섞은 물감을 사용하는 것으로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에게 인기가 있던 방식이다. 넓고 건조한 칠 위에 약간 광택이 보일 듯 말 듯 투명한 붓 자국이 산뜻하게 남겨져 있다. 작가는 이 기법으로 물감층을 쌓으며 그림에 미묘한 색채를 더하고 일반 유화 그림과는 다른 잔잔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보통 유화는 테레핀 오일같은 희석제에 린시드오일이나 뽀삐오일 같은 광택제를 섞고 물감을 풀어 그린다. 이때 광택제의 비율을 높이면 물감이 점점 쫀득하고 잘 밀착되어 보인다. 하지만 에그템페라 기법으로 제작된 모제 아세프자의 페인팅은 전체적으로 매트한 가운데, 붓 자국을 따라 광택이 은은하게 남아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하얗게 젯소칠 된 캔버스천이 아니라 직조가 보이는 회갈색 린넨천 위에 그린 작품은 더 차분해 보인다. 작가의 페인팅이 주제나 재료 면에서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굵고 섬세하게 펼쳐진 제스츄럴 자국이 천과 리본 같은 형태를 만들어 화면 안에서 역동성을 부여한다는 점이 경이롭다.



모제 아세프자의 작품을 보고 있으니 그림이 봄과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감도 산뜻하고, 비정형적 형태들도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때문에 생명의 힘이 솟는, 따스한 바람이 부는 봄이 저절로 생각이 났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은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림 스타일이라서 감상하는데 더욱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모제 아세프자의 개인전은 5월 6일까지니 관심 있는 분들은 직접 찾아가서 작품을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갤러리 조은은 리움미술관과 페이스갤러리 근처에 있어 이 전시를 포함해 세 미술관의 작품을 한 번에 관람할 수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