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기행(13)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전

DDP 동대문디자인플라자

2022.3.4.~ 4.10

【글, 사진=신수안, Artist Sooan Shin며칠 전 동대문 DDP에서 열리는 구찌 전시회에 갔다. 페인팅이나 설치미술 등 다른 전시도 많았지만, 이번 달에는 강한 인상을 주는 몰입형 멀티미디어 전시를 가보고 싶었다. 여기에 입장하려면 사전예약이 필요한데, 지금 가장 핫한 전시라 그런지 표를 구하려면 아침에 눈 뜨자마자 ‘광클’을 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겨우 표를 예약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동대문으로 향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는 전시의 상징색인 핑크색 천으로 만들어진 열기구 조형물이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 아이코닉한 핑크에 이끌려 열기구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전시회는 구찌 100주년 기념으로 지난해 6월 피렌체에서 시작되었으며 도쿄와 홍콩을 거치고 마침내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전시는 구찌의 시즌별 캠페인을 총 12개의 방으로 구성하고 있었다. 또한, 여기에 어울리는 멀티미디어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각 작품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큐레이팅했다. 그는 전시를 통해서 구찌에서의 지난 6년간의 여정에 관객을 초대해 드넓은 상상과 이야기의 세계를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 제목 ‘Archetype’, 아키타이프는 복제될 수 없고 재현될 수 없는 본래 형태인 절대적 ‘전형(典型)’이라는 의미다. 즉,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예술성과 정신이 깃든 제목이다.



컨트롤 룸은 전시장에 처음 입장하게 되면 볼 수 있는 방이다. 푸른 조명이 켜진 어두운 공간에 작은 스크린 여러 개가 동시에 켜져 있으며 화면은 쉴 새 없이 바뀌고 소리 또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모니터에 흘러나오는 영상은 각 전시장과 컬렉션에 대한 영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동시대적 이미지를 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멀티버스(multiverse) 세계관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여기서 각 스크린과 음성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물리적으로는 노출된 전선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모순적이고 흥미로웠다. 또한, 사진에서 보이듯 모니터뿐만 아니라 전광판도 여기저기 붙어있어 실제 통제실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 작품의 특징으로는, 각 영상이 정신없이 빠르게 바뀐다는 것과 작은 모니터가 나름의 질서를 갖고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점에서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아트를 떠오르게 해서 재미있었다.



두 번째 방은 구찌의 여성용 향수인 ‘구찌 블룸’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풍성한 꽃다발을 연상시키는 구찌 블룸은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2017년에 처음으로 구찌에서 선보인 향이다. 그는 이 향수를 통해 진정성 있고 자유로우면서도 포용적인 여성성을 해석하였다. 또한, 후각적 황홀함과 함께 오색찬란한 정원 이미지 안에 있는 여성을 재현했다고 한다. 구찌 블룸의 노트로는 천연 튜베로즈, 자스민, 랑군 크리퍼가 있는데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진 향이 관객들을 가상 정원에 초대하고 있었다. 몇 달전 친구들과 향수 공방에 갔을 때 조향사가 친구에게 어떤 향수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때 친구가 구찌 블룸을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향수에 크게 관심이 없던 나는 그게 뭔지 몰랐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이 향을 맡자마자 바로 이게 구찌 블룸이라는 것을 알아챘고, 풍성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지며 코를 킁킁거렸다.

부드러운 꽃향기와 조용한 정원길을 떠오르게 하는 이 작품은 다른 전시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후각’에 중점을 맞춰서 그런지, 훗날 이 향을 맡을 때마다 전시에 갔던 날과 기분, 공기가 떠오를 것 같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 입 베어먹는 순간 어린 시절 추억이 저절로 떠오르듯이 말이다.



이 공간은 구찌의 2016 크루즈 캠페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가벽처럼 세워진 거울과 영상이 틀어진 스크린이 이곳저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는 마치 관객이 미로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 내 모습과 움직이는 다른 관람객들의 모습이 사방의 거울 안에 질서 없이 비춰서 방향감각을 상실할 뻔했다. 게다가 영상에서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컬렉션을 착용한 70~80년대 감성의 사람들이 바람에 흩날리듯 춤을 춰서 시간과 공간 감각까지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리듬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을 따라 내 몸도 같이 들썩이며 작품에 점점 몰입해갔다. 이 방은 색상 관점에서 파란 조명의 공간과 우아한 주황빛의 영상이 보색 관계를 이루어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디오니서스 댄스> 룸은 시공간을 무시해버려 환각과 착시를 몸소 느끼게 하는 몽환적인 장소였다. 이에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나의 컬렉션에는 직접적인 섹슈얼리티와는 다른 좀 더 미묘하고 은근하면서 다차원적인 로맨티시즘이 담겨있다.”라고 말했다.



여덟 번째 방, 구찌 콜렉터스 룸에는 나비 1,354마리, 구찌 마몽 핸드백 200개, 뻐꾸기시계 1,872개, 그리고 수많은 동물인형이 모여있었다. 투명한 유리 진열장은 물품을 보호하면서도 밖에서도 볼 수 있게끔 했다. 물건들을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조명 때문에 관람객 모습이 유리에 비쳐서 물건과 관객의 물리적 거리감을 만들어냈다. 또한, 강박성이 짙은 이 공간의 바닥과 벽면, 천장은 거울로 되어 있어 서로 반사되고 비추며 끝없이 증식되어 갔다. 구찌 컬렉터들의 열정이 무한히 이어질 거라는 상징일까? 현실감을 의도적으로 없애버린 가상공간 같았다. 전면에 박제된 나비의 푸른 날개에서도 묘하게 차가운 공기가 날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왼쪽에는 수많은 동물인형이 정면을 보고 있었는데 그들의 눈빛이 왠지 모르게 공허해 보였다. 오른편에는 컬러풀한 구찌 마몽백 200개가 진열되어 있어 그걸 구경하느라 내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이번 달에는 독창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큐레이팅한 작품을 만나보았다. 12개의 전시공간은 시즌에 따른 구찌 캠페인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방마다 독특한 정체성과 개성을 갖고 있었다. 특히 구찌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즐겁게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실제로도 명품과 패션을 좋아하는 관람객들이 본인의 철학이 담긴 멋진 의상을 입고 많이 방문하는 것 같다. 이 전시는 원래 3월 27일까지였지만, 워낙 인기가 많아 4월 10일까지 연장되었다. 가고 싶은 분들은 네이버에서 꼭 예약하고 가기를 추천한다.

출처: 신수안의 미술기행 (13) - 포스트24 - http://www.post24.kr/45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