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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광 <무속>전

교보아트스페이스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 1) 2021.2.24 – 4.26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예술은 없다. 모든 민족 예술은 그 민족 전통 위에 있다." (박생광, 1985년 7월 10일)

우리에게 박생광 화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음양오행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오방색(五方色)이다. 우리 선조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오방색을 비롯하여 한국적 주제와 소재, 그리고 우리나라의 민속 문화를 그려냈던 박생광 화가의 작품(1980년~1985년)이 광화문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소개된다. 수묵으로 색을 입혔지만, 물감을 옅고 담백하게 얹은 게 아니라 화려하고 강렬하게 색을 입힌 진채화는 박생광 화가의 그림적 특징이다.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탈, 부적, 굿, 제사, 무당 등은 화가가 한국적 주제와 소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킨다. 이뿐만아니라 무속신앙, 민속문화, 한국인의 정신성 등을 신령한 이미지로 엮은 박생광 화가의 그림은 현재까지도 여러 한국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주며 동시에 영감이 되고 있다.

무당 4, 71×71cm, 수묵채색, 1984

작품 앞에 서서 그림을 감상하면 왠지 모르게 무섭고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굵고 거칠게, 여러 번 종이에 흡수된 물감 자국을 보고 있으면 환각을 경험한 듯 묘한 기분이 든다. “무당4”에서는 왼쪽에 그려진 무당 양옆으로 기가 안개같이 퍼지고 있다. 기는 무당의 신묘함을 표현하듯 정적으로 휘몰아치는 곡선으로 표현돼있다. 하얀 탈을 쓴듯한 얼굴은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눈빛이고, 살짝 열린 입으로 정면을 향해 중얼거리는 듯하다. 그 옆에는 붉은 한자로 적힌 부적이 그림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박생광 화가의 작품에는 부적이 여러 번 넓은 면적으로 나타나는데, 부적이라는 소재는 무당과 함께 엮여 염원을 바라거나 액운을 막으려는 주술적 힘을 뿜는다. 무속의 종교적 의미와는 달리, 박생광 화가에게 이것은 한국 문화의 근본이자 민족적 정체성을 함의한다. 즉, 무속은 민속문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주술성을 포함하는 한국 고유의 전통으로 박생광 화가에게는 표면적 의미 이상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목어, 68.5×69cm, 수묵채색, 1981

박생광 화가는 단청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었다. 단청은 우리나라 목조건물에 그려진 청/적/황/백/흑 색조를 기본으로 하는 색채예술 양식 중의 하나이며 이 또한 음양오행이 사상적 배경이 된다. 앞서 묘사했던 박생광 화가가 화면 안에 가져온 ‘기’나 호랑이, 목어 등, 그 외 배경이 되는 것들이 궁궐이나 사찰에 그려진 단청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80년대 작품의 흐름은 영묘하고 신묘한 모습의 단청 같기도 하다. 실제로 화가는 이전까지 쓰던 일본 분채 대신에 한국 불화에 사용되는 단청 안료를 사용해서 작품을 만들었다.


무속 5, 136×136cm, 수묵채색, 1982


이 작품에서 화가는 한 화면에 여러 가지 요소를 엮고 겹쳐 그렸는데 그림의 상단에는 단청을, 왼편에는 무신도를, 오른편에는 미인도 형상을 가져왔다. 이외에도 화려한 문양과 강렬한 색상으로 다양한 문양과 이미지를 표현했다. 그림 안에 무엇하나 반복적인 것 없이 여러 모습이 엉켜져 있는 모습은 사각형 안에 그려진 요소들이 서로 얽혀 꿈틀거리며 기운을 내뿜는 것 같다.


전시장에는 박생광 화가의 그림들이 단조로운 모습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이미 화가의 작품들에서

강한 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영국미술학교에 다닐 때 “한국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내 작품과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이라고 했다. 실제로도 많은 한국 예술가들이 우리나라의 문화를 토대로 하는 작품을 이어가고 있으며 외국에서도 이러한 아이덴티티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박생광 화가를 조명하듯 K-culture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외국인들이 한국 무속신앙과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

또한, 우리 스스로도 한국인으로서 무속과 민속문화가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K-pop이든, K-drama든 세계 여러 나라로 우리나라 문화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동시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는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는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박생광 화가의 작품이 더욱 멋있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또한, 우리 민족과 한국 예술인들이 그의 작품을 길이 보존하고 아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박환희 개인전 <YOU MAKE ME FEEL HAPPY>

2021년3월12일(금) - 3월22일(월)

갤러리 담 (서울시 종로구 윤보선길 72)


다소 찬 바람이 부는 봄 일요일, 삼청동과 안국동 주변을 걷다 눈길을 끄는 발랄한 그림을 한 점을 보았다. 박환희 작가의 <여름 바다의 문어>였다. 나에게 문어는 꽤나 징그러운 바다생물인데, 이와 다르게 그림 속 문어는 귀엽고 발랄해서 작가의 예술세계가 자못 궁금해졌다.

박환희 작가의 그림은, 어린아이가 작은 손으로 오밀조밀 일기장에 그렸을 법해서 동화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그림의 풍채와 그 안에서 느껴지는 소소하면서도 귀여운 분위기가 관람객의 언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는 듯하다.

▲여름바다의 문어,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53x46cm, 2020

▲선물,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53x46cm, 2021

박환희 작가는 일상에서 경험한 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이것에서부터 그림을 시작한다. 어떤 틀에 맞추어서 형식이나 표현 방법에 따라 그림을 맞추기보다는 사소하고 모호한 순간이 잘 표현되는 형식을 찾아 그림으로 남긴다.

특히 이번 전시, ‘YOU MAKE ME FEEL HAPPY’에서는 작가가 지난 1년 동안 코로나 시국으로 인한 혼란스럽고 힘든 하루하루 속에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의미와 동시에 가족과 보내는 일상에서의 행복을 찾아가려고 했던 노력이 돋보인다.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아이들과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느끼고, 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놀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아이들의 시각은 나보다 더 원초적이고 감정의 폭이 더 넓고 풍부함을 느낀다. 아이들과 같이 할 때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고 작은 것에도 감탄하게 된다. 아이들은 해가 지나 나이가 한둘 많아지면 마냥 좋아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빨리 크는게 아쉽게 느껴졌다. 같이하는 아이의 시각과 감성과 생각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 아쉬운 마음에 같이 나눈 경험들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답답하고 힘든 시기에 "You make me feel happy"라고 주문을 외우듯 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때로는 익숙한 순간을, 때론 낯설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록했다. “

- 박환희 2021.02

▲섬에서의 하룻밤,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62x50cm, 2021


서해에 있는 어느 섬에서 아이들과 깊은 밤을 보낸 어느 날, 별 무리 속 우연히 마주친

별똥별을 본 순간을 담은 그림이다. 달빛에 비친 소나무의 주황빛 줄기와 청아한 파란빛 밤하늘이 아름답다.

갤러리에는 페인팅 외에도 러프하게 찢은 스케치북 종이 위에 수채화 물감으로 자유롭게 그린 재치 있는 드로잉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작은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상황을 담은 그림이 가장 인상적이다. 실제 봉숭아꽃물을 얹은 듯 다홍빛 물감이 투명하고 맑게 발라져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나는 박환희 작가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아이들과의 추억앨범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진을 인화해서 앨범에 한 장 한 장 꽂아 보관하듯이, 박환희 작가 역시 가족과 함께 보낸 순간을 회상하고 그리면서 아이들과의 즐거운 나날들을 간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이 아마도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일 것이다. 갤러리를 들어서는 관람객들에게도 작가의 포근하고 따스한 마음이 전달되어, 그림을 보는 모두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일상이 그려질지 무척 기대된다.


▲전시실

□ 박환희 작가Park Hwanhee 서울 출생 □ 학력 M.F.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urchase, U.S.A. (Printmaking) / B.F.A. Parsons School of Design (Painting) □ 전시경력 2020 가족 별자리, 골든핸즈프렌즈, 서울 / 2019 of all the ordinary, Gallery Jacob 1212, 서울 / 2018 북촌 갤러리, 서울/ 2016 Gang Bawang Wang, Workband Gong 기획전, ini gallery, 제주/ 2008 그문화갤러리 기획초대전, 서울/ 2007 THE DRAWING SHOW, gallery FACTORY, 서울/ 2006 the Current, 갤러리 더 스페이스, 서울 / 2005 Razzle Dazzle, kate spade 청담 플래그슆 스토어 오픈 기념 초대전, 서울 / 2005 Pink Dream, space beam 작가자원 프로그램 기획공모, 인천 / 2004 COMO, 도시환경 프로젝트, art space nabi, 서울 / 2004 외침과 속삭임, 사루비아다방, 서울 / 2004 Mail Art, 수유+너머, 서울


남학현 초대전 <My Miracle> 세종갤러리

2021.2.16~28



포근한 바람이 감도는 늦겨울의 어느 날, 남학현 작가의 개인전 <My miracle>을 보러 세종호텔 안 세종 갤러리에 방문했다. 남학현 작가는 삶의 풍경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몇 가지 요소를 생략하고 정제함으로써 현실과 기억의 중간지점에 대해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미지를 즐기고 만드는 인간의 심리와 본성, 그리고 사고와 충동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그림이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일정한 템포로 그림을 그리며 작품마다 변화해가는 것을 즐기는 작업 방법을 선호하는데, 그는 하루 5~6시간 정도 집중을 하다 보면 다음 날 무엇을 해야 할지, 다음 작품에는 어떤 것을 그리고 싶은지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남학현 작가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아늑한 색감과 휘몰아치며 방향성을 그리는 붓자국의 흐름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의 한 편을 회상시키는 듯 하다. 많은 것이 생략된 페인팅은 오히려 그림 안에서의 구성을 더 돋보이게 하고, 감상자에게 기억 본연의 분위기를 공유하는 느낌을 준다. 특히 하늘의 오렌지, 핑크빛 색감은 황혼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고 인물에 대해 작가가 품는 따뜻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또한 작가가 아내와 함께 마주했던 풍경을 소중히 하고, 흐릿하게 사라지는 순간들을 직접 그림으로써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외에도 작가의 그림에서는 햇빛이 중요한 요소로 보이는데, 이로 인해 그림자 색상 표현이 다양해서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작가가 풍경 속 아내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것은 미국의 페인터 알렉스 카츠가 자신의 아내를 그리는 것과 닮아있었다. 카츠의 페인팅 스타일처럼 캐주얼하고 경쾌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도 몇 있었는데, 그 안에서 나는 현대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Small Miracle no.01, 캔버스에 유채, 91x61cm, 2020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얇게 겹쳐진 붓자국이나 두껍게 올라간 물감, 지워진 흔적 그리고 천에 덜 흡수된 물감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어 매우 매력적이다. 이 때문에 페인팅 안에서 우연적이고 자유로운 붓놀림이 크게 돋보인다. 작가는 투명한 보조제 위에 글리터가 섞인 물감을 얹는 등, 재료에 대한 탐구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멀리서는 단순하게 보이는 풍경이 가까이에서 보면 깊이감이 느껴진다. 특히,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수면을 그릴 때, 글리터 물감을 연하게 얹어 표현한 부분이 실제 모습과 기억으로 여과된 것 간의 중간지점을 새롭게 잇는 것 같다. 한편 작가의 일렁이고 흩날리는 붓질은 배경이나 인물의 얼굴 등 여러 요소를 생략하면서도, 그림 안에서 커다란 흐름과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어 흥미롭다.

Some Small Hope 02,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112×194cm, 2018


지평선 너머를 보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사라져가는 붓의 느낌이 인상적이다.


작가의 신작들은 이전 작품보다 따사롭고 밝은 색채로 구현되어 있었다. 색상은 미묘하지만, 붓질을 크고 과감하게 하여 여러 가지 힘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어떤 풍경을, 어떤 식으로 생략 및 구성하고, 어떤 색을 선택해서 그리는 건지 호기심이 드는 전시였다. 작가의 다음 작업이 어떻게 변화할지도 궁금해졌다.


Artist Painter Sooan Shin's contextual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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