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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바젤리츠 <가르니 호텔>전,

타데우스 로팍 서울 (서울시 용산구 독서당로 122-1)

2021년 10월 7일~11월 27일



“선교사들의 유랑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의 이미지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한국과 독일에서는 비슷한 이야기들이 사람들 사이에 전해진다. 이곳의 예술과 그곳의 예술은 두 개의 거대한 기념비이다. 서로 비교될 수는 없지만 웅대한 그런 기념비 말이다. 오늘날 비행기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그림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게오르그 바젤리츠, 2021

타데우스 로팍은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갤러리를 둔 유럽의 명문 갤러리다. 이번에 아시아 최초로 서울 한남동에 서울 갤러리를 새로 개관했다고 하여 궁금해서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서울 갤러리 개관전으로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그는 독일 신표현주의 대표작가이자 페인팅, 판화, 조소까지 넓은 범위의 매체를 다뤄 작품활동을 한다. 이번 <가르니 호텔>전시에서 작가는 대형 캔버스에 자신의 아내와 작가 본인의 자화상을 뒤집힌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페인팅뿐만 아니라 붉은색과 검은색 잉크로 자유롭게 표현한 드로잉도 같이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바젤리츠의 회화와 드로잉을 같이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Am Abend Tanz, 2021, Oil on canvas, 250 x 200 cm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오랫동안 자신의 부인인 엘케의 형상을 탐구한 작가다. 신작에서 그는 부인 엘케의 초상을 거꾸로 배치하여 낯선 분위기를 더했다. 전시 도록에 따르면, 바젤리츠는 형식에서 내용을 배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969년 이래 작품의 구도를 거꾸로 뒤집어 왔다고 한다. 역상을 통해 그는 전통적인 회화의 원칙을 탈피하는 새로운 표현방식을 이끌어 냈다. 또한, 이러한 형식적 접근은 엘케를 그리는 과정 중에 인물의 초상 속으로 잠입할 법한 어떠한 조화나 아름다움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하며, 작품이 추상과 구상 사이를 향해가는 결과물로 나아가게 한다고 한다.

실제로 바젤리츠의 작품은 일반 초상화같이 인물의 얼굴이나 의복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없고, 인물이 있는 공간도 거칠게 그어진 선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더욱 추상성을 띤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캔버스에 담긴 대상이 도대체 여성인지, 남성인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잘 모르게 표현되어 있다. 필자가 거꾸로 매달린 피사체를 보고 오히려 공포감을 느꼈던 이유는, 작가가 부인의 형상을 그렸다는 배경지식을 접하기 전이었고, 매달린 형태가 마치 정육점에서 고기를 썰어 고리에 걸어놓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대로 묘사하지도 설명되지도 않은 검은 배경은, 우주 혹은 매우 어두운 공간을 연상시키고 있다. 작품 하나하나가 마치 한밤중에 손전등으로 숨어있는 사람을 갑작스레 발견해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Schwarze mit Melone, 2021, Oil on canvas, 200 x 250 cm

“나는 캔버스를 바닥에 눕힌 채로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내가 5-60년 동안 그려 온 엘케의 초상 작품이 그렇다. 나는 아주 어린 아이 같이, 간단하고, 어리석고, 또 꽤나 잔혹하게 그린다. 잘 전송하기 위해 몇몇 특정한 규칙을 지킨다. 색끼리 접촉이 되면 안 된다든가, 어딘가에는 꼭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든가 하는 등 말이다. 그리고는 캔버스를 그 위에 올리고 전송시킨다. 그것이 잘 옮겨졌는지 아닌지는 보는 즉시 알 수 있게 된다.”



바젤리츠의 작품에서 특별히 돋보이는 것은 바로 물감을 찍어낸 자국이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제2의 캔버스에 두껍게 물감을 올려 표현주의적 필치로 그림을 그린 후, 이것을 실제 작품이 될 캔버스에 찍어낸다.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우연적 기법의 부산물인 자글자글한 선, 긁어낸 자국, 떨어뜨린 물감 자국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재미를 더한다. 그의 작품은 형상이 자유롭고 힘 있는 붓 터치로 표현됨으로써 관람객에게 불안정한 심리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 이유는 형상이 스켈레톤이나 미라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인물이 있는 공간은 하얀 선으로만 그려짐으로써, 인물이 어떤 좁은 공간에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한편, 밝고 강렬한 색상은 검은 배경과 대조되어 인물을 더 돋보이게 하는데, 이러한 작용이 심리효과를 더 극대화한다.


Untitled, 2021, Red ink and ink wash on paper, 50.6 x 66.7 cm.

작가에 의하면, 잉크로 제작된 드로잉 작품들은 자신의 강한 감정을 내포한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붉은색 잉크가 흥건한 물과 만나서 흐트러지고 풀어지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붓놀림은 작가의 수채 드로잉 특유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이와 연관된 감정을 환기하기도 한다. 진홍빛 물감을 보니 피가 연상되어 무섭지만, 스며든 물 자국 때문에 아련한 꿈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작가가 얇은 붓으로 자유롭게 붓질한 것이 대형 캔버스 작품들과 이어지는 면모가 있어 보인다. 한편 바젤리츠의 드로잉 중 간간이 나타나는 수사슴은 작가의 고향인 도이치바젤리츠의 풍습, 자연, 그리고 전통을 반영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거꾸로 매달린 작품들을 멀리 외국에 가지 않아도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그의 힘 있는 신작들을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갤러리에서 감상할 수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바젤리츠의 <가르니 호텔> 전시는 서울 포트힐에서 11월 27일까지 전시된다.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21.7.8-10.10



요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덕분에 대중 사이에서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많이 높아졌다. 대중들은 우리나라 미술의 특징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고, 어디까지가 미술이라고 볼 수 있는지 등을 궁금해한다. 요즘에는 회화, 조각, 등 전통적인 장르를 포함해서 실험적이거나 개념적 미술도 현대미술이라는 틀로 같이 엮여 있다. 그렇다면 근현대 이전의 미술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우리의 문화재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미술의 개념이라고 칭해진 게 아닐까. 덕수궁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는 우리나라의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을 한데 두어 감상하기 쉽고 한국의 미를 같이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이 전시는 총 네 가지 키워드 [성스럽고 숭고하다/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다/ 조화로움으로 통일에 이르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파트는 성(聖)이다.


▲오태학, <마음>, 종이에 채색, 2003

이 파트에서는 종교적 성스러움과 숭고함의 가치를 되짚어보는 작품들, 예를 들면 통일신라 석굴암 관련 작품이나 고구려 고분벽화 등이 전시되어있다. 이 파트는 종교미술로서 부처를 향한 믿음이나, 천상 세계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고 이에 대한 귀중함을 널리 알리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자리한 곳이다. 성스러움은 우리나라 미학의 핵심으로서 이후 미술가들에게 주제 측면에서 영향을 주었다. 이곳에는 불교 미술품이 많이 전시되어있는데, 그중에서 내 눈에 띈 것은 오태학 화가의 <마음>이었다. 평온해 보이는 부처상과 포근하게 겹쳐진 채색 방법이 한데 잘 어울려, 감상자에게도 번뇌가 일제히 가라앉는 기분을 주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당대 종교미술 작품을 보며 이런 마음을 느꼈을까 궁금해진다.


▲ 이중섭, <봄의 아동>, 종이에 연필, 유채, 1952-1953, 32.5x49.6cm

이중섭 화가의 <봄의 아동>을 보면, 산이 보이는 들에서 아이들이 곤충과 식물을 갖고 놀며 자연을 만끽하는 모습이 보인다. 전시 도록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려청자의 뛰어난 장식 기법과 도상들은 이중섭 작품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고려청자는 상감기법으로 제작되는데, 이는 자기 표면에 무늬를 음각하여 자국을 남기고 다른 재료를 메워 무늬를 살리는 방식이다. 이중섭 화가의 유명한 ‘은지화’ 기법이 이와 비슷하다. 은박 위에 뾰족한 도구로 드로잉을 하면 이것이 그대로 음각이 되고, 그 위에 물감을 바르는 방식으로 이중섭 화가는 기법을 발전시켰다. 이중섭 화가가 문화재 중 하나인 고려청자의 제작방식을 차용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겸재 정선, <박연폭>, 조선 18세기, 종이에 수묵, 119.5x52cm

두 번째 파트는 ‘아(雅):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이다.

이곳에는 격조 높은 심미적 취향과 화법을 추구하는 미술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전시도록에 따르면,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많은 한국 화가들이 금강산을 그리며 한국의 이상향을 표현하는 데 영향을 주어 풍류 미학의 결정체가 되었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 산천을 그린 실경에 남종화법을 가미하여 형성된 진경산수화풍을 정선은 훤칠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남종화법은 기교가 아니라 정신적이고 인격적 표현을 중시하며 담백하면서도 청아한 것을 우선으로 하는 표현이 특징이다. 박연폭포가 북한 개성에 있어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림 앞에 서서 보니 물 이 얼마나 우렁차게 떨어지는지, 마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윤명로, <겸재예찬 M.310>, 캔버스에 유채, 2000

이 작품은 윤명로 화가의 ‘겸재예찬’ 연작 중 하나로,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을 이용해서 나뭇가지나 바위 등 자연의 흔적을 담아낸 작품이다. 어두운색으로 강렬하게 형태를 그리다가도, 그 위에 유화 기름을 흘려 형태를 지우고 잔잔한 자국을 남겼다. 또한, 물감을 묽게 하여 표면에 흩뿌리는 기법을 취해, 그림을 보면 전체적으로 힘이 느껴지면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는 작품이다. 한국적 정서가 서구적 재료를 만나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한다.

제 3파트는 [속(俗)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다]이다.

조선 시대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포함해 조선 시대 풍속화, 미인도, 민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 <까치 호랑이>, 종이에 채색, 93x60cm, 조선후기

이 민화에서 호랑이는 요괴같이 표현되어 있다. 나무와 비교해서 호랑이의 크기는 매우 듬직하고 거대하며 얼굴은 동물도 사람도 아닌 것 같이 보인다. 입은 흡사 드라큘라처럼 보이고 눈은 도깨비 같다. 조선 후기에는 호랑이가 이런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던 걸까. 100m 거리에서도 무서워서 줄행랑칠 것 같은 인상이다. 조선 시대 민화에서 호랑이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일찍부터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아 호랑이가 많이 서식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단군신화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뜻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민족의 호랑이에 대한 신앙은 한마디로 경이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미술 양식에 표현되었는데 불교미술에서는 산신령, 회화에서는 군사나 벽사 등 강인한 존재를 상징했다. 반면 조선 시대 민화에서는 이에 비해 해학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많이 비추어졌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해학적 정서가 투사된 것이다. 이처럼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에 맞물린 영험한 존재로 보이고 있다.

▲ 이만익, <안녕>, 실크스크린(ed.56/266), 36 x 58cm, 1989

이 작품은 이만익 화가의 실크스크린 작품, <안녕>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제작된 판화로 보인다. 바로 위의 <까치 호랑이>와 비교해서 이만익 화가의 호랑이는 너무나 귀엽게 표현되어있는 것이 재미있다.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에게 호랑이는 더욱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도 백호를 모티브로 한 수호랑이었다.

제4 파트는 <화 和: 조화로움으로 통일에 이르다> 이다.

이 전시장에서는 이질적이고 또한 대립적인 두 가지가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채 화합을 이루는 미술 작품들을 선보인다. 우리의 문화유산 및 문화재가 현대미술과 만나 공존하는 지향성을 표출한다. 예를 들면 진경산수화를 레고 블록 같은 현대적 재료로 재구성한다든지, 불교 반야심경을 TV와 결합한다든지 말이다. 즉, 현대 작가들이 과거 우리 민족의 문화재에서 영향을 받아 이를 오마주 하거나 모양을 변형해서 조화로운 미술을 시도하는 것이다. 한국미란 무엇인가? 이 전시장에서는 작가 스스로 질문하여 미술기법이나 주제를 찾아 한국미의 진화하는 주체성을 다룬다.


▲황인기, <오래된 바람-금강산>, 캔버스에 아크릴릭, 크리스탈, 2016

▲ 백남준, <반야심경>, 혼합재료, 1988


한국미술, 한국미를 단순히 한 단어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이번 전시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에서는 네 가지 특징적 키워드를 통해서 한국미술의 발전상을 보여주었다. 회화만 있는 게 아니라, 디지털 등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한 미술 작품이 우리의 문화재와 같이 전시되어 있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더불어서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한국미를 조명하는 전시가 많아 눈이 즐거워지는 요즘이다.


임채욱 초대전 <블루 마운틴>,

흰물결 갤러리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150 흰물결 아트센터)

2021.8.5.~9.30

지난 한 달은 더위 때문에 정신과 육체가 힘들었다. 장마가 끝나고 열흘 넘게 이어진 무더위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건식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과 그로 인한 열로 기력이 쭈욱 빠지다가, 8월 중순부터는 날씨가 시원해져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쾌한 기분을 더 잘 느끼기 위해서 나는 집 주변 산에 올라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날씨에 지친 나는 탁 트인 곳에 가서 저 멀리 시원한 경치를 바라보고 싶었다. 이런 와중에 발견한 전시가 흰물결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 <블루마운틴>이다. 여기서 임채욱 작가의 초대전이 진행 중이었다. 작가 본인이 산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을 포토샵으로 가공하여 특수 제작한 한지에 인쇄하는 방식으로, 투명하고 운치 있는 산의 분위기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블루마운틴 2114>, 50x150cm, 한지에 안료 프린트

산이 가장 파랗게 보일 때는 언제일까? 작가의 말에 의하면, 가장 선명한 푸른빛의 산은 추운 겨울바람이 불지 않는 맑은 날 오전 9시에서 12시 사이 해가 역광으로 비출 때라고 한다. 임채욱 작가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저 멀리 있는 산이 안개에 걸쳐 아른아른 보이며, 푸르고 잔잔한 분위기가 있는 <블루마운틴 2114>와 <블루마운틴 2007>이다. 먹으로 산을 담백하고 굴곡지게 그린 진경산수화와는 다르게 이 작품들은 산이 겹쳐있는 모습을 단아하고 평온하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을 멀리서 보면 한국화 물감을 얕게 여러 번 겹쳐 만든 것처럼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직조가 잘된 단단한 한지, 그 안에서 하늘거리는 종이실 같은 걸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이 한지에 프린팅되어 있기 때문에 가까이서 봐도 그림 같은 인상을 준다. 꾸물꾸물 나풀거리는 실이 운해처럼 보여 산과 산 사이의 푸른 공기를 드러내는 듯하다. 한 겨울날의 일출을 떠올리게 하는 은은한 핑크빛 하늘이 짙푸른 산과 만나 비현실적이면서도 탁 트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블루마운틴 2007>, 50x150cm, 한지에 안료 프린트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소백산을 등반한 게 생각났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흔들다리 위 눈보라가 몰아치는, 매우 차가운 하얀 산의 공기와 감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작 꼭대기에 올라가니 눈보라는 어디 가서 없고 일출 직전의 고요한 하늘과 파랗고 하얀 산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블루마운틴이라는 전시 및 작품 제목도 인상적인 게, 산이라 하면 보통 연두색이나 짙은 녹색을 떠올리는데 ‘블루’를 주된 색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임채욱 작가의 작품은 차가운 겨울에 만날 수 있는 청명하고 깊은 파란빛을 묘사하는 것 같아 내 어릴 적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현재의 정신도 맑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갤러리에서도 작품을 널찍하게 볼 수 있도록 소파가 있어서 잠시 앉아 명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바람을 쐬며 집 뒷산에서 바라본 풍경과는 다르게 편안한 기분이 주가 되어 더위가 싹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한국의 전통 산수화는 바위가 돋보이는 암산을 그렸잖아요. 진경산수화에서 금강산, 삼각산, 인왕산이 등장하는 이유예요. 저는 우리나라 산의 ‘겹침’의 미학과 ‘쪽빛’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블루 마운틴’은 호주와 자메이카에 있지만, 한국처럼 추운 겨울의 맑고 깊은 푸른빛을 감상하기는 힘듭니다. 어쩌면 한국에서만 진정한 블루 마운틴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1 임채욱


임채욱 초대전 블루 마운틴은 흰물결 갤러리에서 9월 30일까지 진행되니, 청아한 산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분들은 직접 가서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Artist Painter Sooan Shin's contextual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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